이곳은 올레길 14코스의 끝이자, 15코스가 다시 시작되는 지점인 한림항
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
이렇게 ‘끝과 시작이 겹치는 장소’가 유난히 의미 있게 느껴진다.
올레길을 걷는 동안 바람도 많이 맞았고,
생각보다 몸을 많이 써서였는지
한림항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배가 꽤 고팠다.
이럴 때는 괜히 유명한 곳을 찾아다니기보다
지금 이 동네에서 오래 장사해온 곳이 더 믿음이 간다.
어디가 좋을지 잠깐 고민하다가
한림항에서 택시 기사님께 조심스럽게 여쭤봤고,
그렇게 추천받아 찾아간 곳이 블랙씨걸이다.

한림항 근처에서 가성비 좋게 회를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.
가게에 들어섰을 때의 첫인상은 화려함보다는 담백함에 가까웠다.
관광객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
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찾을 것 같은 분위기.
이런 느낌의 식당은 대체로 실패가 적다.
이날 먹은 메뉴는 고등어 회와 잿방어였다.

올레길을 열심히 걷고 나서라
많이 허기진 상태에서
고등어 회는 첫 점부터 인상적이었다.
살은 단단하면서도 질기지 않았고,
비린 맛 없이 깔끔했다.

괜히 ‘고등어 회는 호불호가 갈린다’는 말이 있는데,
이날만큼은 그런 걱정이 전혀 들지 않았다.
지금까지 먹어본 고등어 회 중에서도
손에 꼽힐 만큼 만족스러웠다.
잿방어 역시 담백하면서도 고소했고,
회 한 점 한 점이 과하지 않아서
천천히 먹기 좋았다.

열심히 걸은 뒤라 그런지
자극적인 맛보다는 이런 정직한 맛이 더 좋게 느껴졌다.
함께 곁들인 한라산 소주는
보이는 그대로 살얼음이 낀 상태로 나왔다.
차갑게 살얼음 낀 소주와 회를 함께 먹으니
괜히 말수가 줄어들고
음식에 더 집중하게 됐다.
가성비라는 말이 어울리는 식사였다.
가격 대비 구성도 좋았고,
무엇보다 ‘걷고 난 뒤 제대로 먹었다’는 느낌이 들었다.

올레길을 걸은 하루의 마무리로 부족함이 없었다.
식사를 마치고 다시 한림항 쪽으로 나왔을 때,
이 식당이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다.
올레길 14코스를 마치고 들르기에도 좋고,
15코스를 앞두고 잠시 쉬어가기에도 부담 없는 위치다.
이날의 식사는
단순히 한림항 근처 맛집을 다녀온 경험이라기보다
올레길 하루를 잘 마무리했다는 기억으로 남았다.
잘 걷고, 잘 먹고,
다시 다음 길을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.

블랙씨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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